“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루카 16,23)
이틀 전에 쓰레기 매립지에서
재활용품을 모아 하루하루 살아가던 아저씨 한 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분은 음식 나눔을 하러 가면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었습니다.
가끔 그분이 보이지 않으면,
오늘은 어디 가셨냐고 묻게 될 만큼 기다려지던 분이었습니다.
우리를 가장 반갑게 맞이해주는 분이셨고, 순수한 아이 같은 분이셨습니다.
보통은 술을 한잔 걸쳐서 그런지 늘 기분 좋게 일하셨습니다.
야채를 안 좋아해서 양배추는 골라내 버리시곤 하셨는데,
먹는 내내 자기는 양배추는 안 먹는다는 것을 모두가 알기를 바라듯이 몇 번이고 되뇌곤 하셨습니다.
한 번은 자기는 양배추는 빼고 달라는 난처한 주문을 하시기도 하셨을 정도입니다.
그분은 쓰레기 매립지에서 숙식을 하며 지내는 것을 자랑하듯이 이야기하며
흙 먼지가 잔뜩 묻은 커다란 물통을 내밀어 우유차를 가득 채워 달라고 몇 번이나 강조하시곤 했습니다.
보통 음식을 두 그릇씩 가득 드시곤 하셨는데,
한 그릇을 드시는 와중에도, 자기는 두 번 먹을 것이라고 반복해서 이야기하셨습니다.
술이 거나하게 취한 날에는 식사를 마친 후, 고맙다며 악수를 청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때는 서운해하실까 봐 얼른 손을 잡아드리곤 했지만,
땟국물로 범벅이 된 새까만 손을 보면 망설여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웃음을 주던 그분이
쓰레기 매립지에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 생각과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루카 19,2
쓰레기장 한 켠 사람들이 버린 매트리스와 넝마 속에 몸을 누이면서도 기쁘게 살던 나자로였습니다.
끔찍한 사고가 마음이 아프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 이제는 이 세상의 고생을 끝내고 하느님 아버지의 품에 안겨서 안식을 누릴 것이 분명해 보여서,
이 작은 한 사람을 기억하고 돌보시는 하느님의 그 크신 사랑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 무엇도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이 평화와 안식을 누릴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놓이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고생이 많았구나, 이제 편히 쉬거라” 하는
그 인자하신 목소리에 어린아이처럼 신기해하고 기뻐하는 그 웃음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어쩌면 이제 아무도 기억하지 않고,
또 이름도 모르는 그분을 언제가 다시 뵙게 될 날을 기다리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