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 몽골 가톨릭 교회의 역사
순례를 시작하기 전에, 우리가 딛고 설 땅의 신앙 역사를 먼저 살펴봅니다. 몽골 가톨릭은 길고도 단속적인 역사를 지녔습니다. 중세의 첫 만남, 오랜 침묵, 그리고 1992년의 새로운 시작입니다.
1. 중세의 첫 만남
사실 그리스도교가 몽골 땅에 닿은 것은 생각보다 훨씬 오래되었습니다. 다수의 기록에 따르면, 그리스도교는 이미 7~10세기에 고대 시리아 전통을 잇는 네스토리우스(경교)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몽골에 처음 전해졌습니다. 다만 이후 여러 세기에 걸쳐 그 존재는 끊겼다 이어지기를 반복했습니다.
몽골 제국 시기에 네스토리우스 신앙은 한때 상당히 번성했습니다. 케레이트 부족 출신의 여러 칸의 어머니와 아내가 네스토리우스 신자였고, 궁정의 고위 관리 중에도 신자가 적지 않았습니다. 옛 수도 카라코룸은 여러 종교가 공존하는 국제도시였는데, 그곳에는 상설 네스토리우스 성당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1254년에는 몽케 칸이 가족과 함께 카라코룸의 네스토리우스 경당에서 열린 전례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2006~2009년 몽골·독일 공동 발굴팀은 카라코룸 북쪽 외곽에서 십자가 조각과 유럽풍 촛대를 닮은 청동 유물이 나온 건물 유적을 찾아냈는데, 이는 그 시기의 네스토리우스 성당으로 추정됩니다.
로마 가톨릭과 몽골의 만남은 13세기에 이루어졌습니다. 몽골 제국이 유라시아를 가로지르던 시기, 교황과 유럽의 군주들은 사절을 보냈습니다. 프란치스코회 수도자 조반니 다 피안 델 카르피네가 1246년 카라코룸에 도착해 구육 칸을 만났고, 이후 기욤 드 뤼브룩도 몽골 궁정을 찾았습니다. 14세기 초에는 조반니 다 몬테코르비노가 원나라의 수도 대도(베이징)에 교회를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원 제국의 쇠퇴와 함께 이 첫 만남의 흔적은 거의 사라졌고, 이후 몽골 땅은 오랫동안 티베트 불교(라마 불교)와 샤머니즘의 세계로 남았습니다.
- 네스토리우스 이교란? - 가톨릭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이시면서 동시에 인간이시며, 이 두 본성이 하나의 위격(Person) 안에 완전히 결합되어 있다는 ‘위격적 일치'를 믿습니다. 하지만 네스토리우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너무 엄격하게 분리하여, 마치 그리스도 안에 두 개의 인격이 공존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견해를 제시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이 완전히 분리된 것처럼 보일 수 있었기에, 431년 에페소 공의회는 이를 그리스도의 단일성을 훼손하는 것으로 보고 이단으로 단죄했습니다.
에페소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판명된 이후, 이들은 로마 제국 내에서 신학적 정통성을 잃고 점차 박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한편 당시 로마 제국과 적대 관계였던 페르시아(사산 왕조)는 이들을 정치적 목적 등을 위해 환대했습니다. 로마의 박해를 피할 수 있었던 이들은 페르시아를 거점으로 삼아 실크로드를 따라 중앙아시아와 몽골 등지로 선교 영역을 넓혀갔습니다. 이처럼 네스토리우스교는 비록 가톨릭교회와 신학적 견해 차이로 분리되었지만, 7~10세기경 실크로드를 통해 몽골 땅에 그리스도교 복음의 씨앗을 처음으로 전파했던 역사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2. 사회주의 시기와 종교의 공백
20세기 들어 몽골은 1924년 사회주의 인민공화국이 되었고, 종교 활동은 강하게 억압되었습니다. 수백 곳의 사원이 파괴되고 많은 승려가 희생되었습니다. 이 시기 몽골 안에서 조직적인 그리스도교 신앙 활동은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가톨릭 교회의 본격적인 진출은 1990년 민주화 이후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3. 1992년, 새로운 시작
1992년은 현대 몽골 가톨릭 교회의 출발점입니다. 민주화와 함께 몽골 정부와 교황청이 외교 관계를 맺었고, 그해 성모성심수도회(CICM, 원죄 없으신 성모성심 수도회) 소속 선교사들이 몽골에 들어왔습니다. 김성현 신부님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2년은 그 진출의 10주년이 되는 해였고 그 무렵 몽골 선교지역이 지목구로 승격되어 몬시뇰 웬체슬라오 셀가 파딜랴(웬즈)가 초대 지목구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1992년 수교와 함께 몽골에 파견되었던 선교사였으며, 2003년 8월 29일 울란바타르 성 베드로 바오로 주교좌 성당에서 몽골 교회 첫 주교로 서품되었습니다.
교회는 맨땅에서부터 시작해야 했습니다. 전례서를 번역하고, 성가를 만들고, 미사 경본을 다듬는 일까지 모두 처음 하는 일이었습니다. 김성현 신부님은 첫 본당을 세우던 시절을 두고, 성탄·부활·혼인 등 무엇 하나 첫 경험 아닌 것이 없어 전례서를 번역해 가며 운용해야 했다고 적었습니다. 개신교 번역 성서와 몽골어 찬미가를 빌려 쓰면서 몽골어 미사를 드리기 시작했고, 세 본당이 힘을 합쳐 몽골어 성가책을 만들기로 했던 것도 이 시기의 일입니다.
4. 오늘의 몽골 교회
선교가 시작된 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몽골 가톨릭 교회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지역 교회 가운데 하나입니다. 전국의 신자 수는 약 1,500명, 본당은 아홉 곳입니다. 사제와 수도자 대부분이 여러 나라에서 온 선교사들이며, 신자 공동체는 작지만 희망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2003년 김성현 신부님이 첫 영세자를 배출하던 무렵 울란바타르에는 세 곳의 본당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가 성 베드로 바오로 성당(현 주교좌 성당), 두 번째가 신부님이 세운 항올 성모승천 성당, 세 번째가 착한목자 성당이었습니다.
교회의 위상도 높아졌습니다. 초대 지목구장 웬체슬라오 셀가 파딜랴 주교(웬즈)에 이어, 2020년 이탈리아 콘솔라타 선교회 소속 조르조 마렝고 신부가 울란바타르 지목구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2000년부터 몽골 아르바이헤르에서 사목해 온 선교사로, 2020년 8월 주교로 수품되었고 2022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추기경에 서임되었습니다. 그리고 2023년 9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몽골을 사목 방문했습니다. 신자 1,500명의 작은 교회를 교황이 직접 찾은 것은 이 공동체에 큰 의미였습니다. 김성현 신부님은 이 교황 방문을 준비하던 중 같은 해 5월 선종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