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항올 성모승천 성당
울란바타르 항올 구역에 자리한 성모승천 성당은 몽골인을 위한 첫 본당이자, 김성현 신부님이 직접 세운 성당입니다. 가난한 이들과 거리의 아이들이 모여든 이곳은 신부님 선교의 심장과도 같은 곳입니다.
이 성당의 이야기
2002년, 몽골 선교 장상 몬시뇰 웬즈로부터 본당 신설과 사목을 제안받은 김성현 신부님에게는 사랑의 선교회 수녀들을 통해 만난 몇 명의 몽골 어린이가 전부였습니다. 신부님은 아이들과 함께 묵주기도를 바치며 본당 건립을 준비했습니다. 묵주기도 한 단에 1달러를 주시리라는 간절한 마음이었습니다.
성당 터를 정한 데에는 신부님다운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시 그 일대는 나무와 숲뿐이었지만, 인근 공장에서 일하는 젊은 노동자들이 아침저녁으로 그 길을 오갔습니다. 신부님은 그들이 잠시 쉬고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 그 자리를 택했다고 합니다.
2002년 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에 성전을 봉헌했습니다. 첫 번째 성당이 베드로 바오로 성당이니, 사도들의 모후이신 성모님을 주보로 모시는 것이 적당하다고 여겼습니다. 좌석은 70여 석에 불과했지만, 봉헌 직후부터 좁다고 느낄 만큼 사람이 모여들었습니다. 사랑의 선교회 수녀들이 키워온 아이들 50여 명이 주요 구성원이었습니다.
외국어 없는 성당
신부님은 이 성당의 특징을 ‘외국어를 전혀 쓰지 않는 것’으로 삼았습니다. 가끔 영어 성가를 부르고 싶어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자제시켰습니다. 몽골어 성가가 먼저 자리 잡고 자신감이 생기면 그때는 어떤 언어로도 부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외국인 선교사들과 외국어가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오히려 몽골 현지인을 주눅 들게 하고 의존심을 키운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막 피어나는 몽골교회는 어떻게 피어날지 모르는 묘목과 같다. 가르치는 대로 배우고 보여주는 대로 따라온다고 할 때 더욱 조심스러운 것이리라.
3년간의 보고서(2003)
거리의 아이들의 아버지
항올 성당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아이들입니다. 신부님은 본당을 시작하면서 성당 건물 안에 예비 신학생 방을 만들고 하느님께 청했습니다. ‘주님, 저에게 아이들을 보내 주십시오.’ 그리고 가난한 아이들, 부모가 없는 아이들, 학업의 기회를 놓친 아이들을 성당으로 불러들여 함께 먹고 자고 가르쳤습니다. 한때 80~100명의 젊은이가 모이기도 했습니다.
아버지가 없던 한 아이에게 신부님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알았다. 그러면 이제부터 내가 네 아버지다.” 그 아이들 가운데 훗날 한국에 유학해 사제의 길을 걷게 된 이도 있습니다. 신부님이 본당을 준비하며 품었던 단 하나의 소원 ― ‘이 아이들 중에 훌륭한 사제가 한 명만 나오게 해 달라’ ― 이 이루어진 셈입니다.
가난한 본당의 헌금 봉투
신부님은 본당 시작부터 모든 신자가, 아이들까지도 헌금을 하게 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껌값을 아껴 봉투에 좋은 생각을 담아 봉헌하라고 가르쳤습니다. 5원, 10원짜리 꼬깃꼬깃한 돈이 모였고, 너덜너덜한 지폐를 스카치테이프로 붙이는 일도 신부님의 몫이었습니다. 이 헌금은 공동체가 함께 먹는 빵을 사고, 나머지는 가난한 이들을 돕는 데 썼습니다.
이 돈은 외국에서 들어온 돈도 아니고, 우리 가난한 신자들이 한 푼 한 푼 모은 돈이라고…
3년간의 보고서(2003)
이곳에서 읽는 신부님의 글 ― 성모님, 기다림의 어머니
성당의 주보를 성모님으로 정한 까닭을, 신부님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평생 마음에 간직하고 물으며 살아간 분’이기 때문이라고 적었습니다. 갖가지 동기로 성당에 모여든 몽골의 형제자매들이 일생을 통해 분명히 깨달아 가야 할 것도 바로 그 고백이라고 보았습니다.
예수님을 알아가는 이 여정에 있어서 가장 탁월하신 분, 하늘의 성스러움과 세상의 현실을 넘나들며 한결같이 하늘을 바라보며 걸어가신 분, 성모님의 전구가 이 신생교회에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 일을 마음에 두었다 — 「땅끝까지」 원고
순례 묵상
항올 성당에 들어서거든, 이 작은 성당이 묵주기도와 가난한 이들이 한 푼씩 모은 헌금으로 세워졌음을 기억하십시오. 신부님이 거리의 아이들에게 “이제부터 내가 네 아버지다”라고 말했던 그 마음으로 이 공간을 바라본다면, 건물의 크기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사랑의 크기가 보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