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 마음에 새기는 신부님의 글
신부님이 「땅끝까지」와 보고서, 편지, 마지막 강의에 남긴 글 가운데 영성이 깊이 배어 있는 대목을 모았습니다. 순례를 마친 뒤, 혹은 길 위에서 한 편씩 천천히 묵상하시기를 바랍니다.
1. 목마르다 — 몽골의 첫날 밤
성금요일에 몽골 땅을 밟은 신부님이 도착 첫날 밤에 남긴 기도입니다. 십자가의 주님과 함께 죽고 부활하려는 선교사의 출발점이 담겨 있습니다.
“목마르다!” 목마르신 주님! 당신의 갈증은 이 세상의 갈증입니다. 메마른 땅, 몽골에 왔습니다.
오늘 진정 당신의 죽으심에 저도 함께 죽었나이다. 당신과 함께 부활키 위해…
진정 저의 갈증과 욕망을 추구하지 아니하고 당신의 목마름을 지니게 하소서.
몽골의 첫날 밤 (2000)
2. 통나무를 자르며
농장에서 신학생들과 통나무 경당을 지으며 쓴 첫 편지입니다. 노동을 자기 비움의 길로 삼은 신부님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나자렛의 청년 예수, 목공 일로 근육을 만드셨을 그분, 그분을 많이 닮을 수 있는 은총의 시기!
통나무 하나를 자르며 내 안에 가득한 자존심을 함께 잘라내고, 20cm짜리 못을 박으며 교만을 빼어내 심고, 도끼날로 옹이를 날리며 나의 교만함을 더불어 날릴 수 있다면…
몽골 와서 처음으로 편지를 쓴다 (2000)
3. 나는 갑부라네
같은 편지의 끝맺음입니다. 가난을 박탈이 아니라 자유로 살아낸 신부님의 유쾌함이 담겨 있습니다.
나는 결혼도 안 하고 내 집을 장만한 갑부라네.
가나안 농장 나의 게르에서, 김 스테파노 (2000)
4. 나는 모든 보상을 다 받았다
본당 사목의 고단함 속에서도 신부님이 발견한 기쁨입니다. 세례받은 이들이 성체를 모시러 나오는 모습 하나로 충분했습니다.
영세한 이들이 평일 미사에 성체를 모시러 나올 때, 나는 모든 보상을 다 받았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방법이 어떠했든, 의미가 어떠했든…
3년간의 보고서 (2003)
5.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은 아닌가
선교지에서 신부님이 절감한 것은, 자신을 지탱해 주던 모든 것이 사라진 자리에서 오직 살아 있는 믿음만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내가 쓰러질 것만 같아도 나를 지탱해 주는 것이 많았던 것 같고… 현재의 나에게 있어서는 때때로 모래 위에 집 짓는 것이 아닌가 하는 위기의식이 나를 깨어나게 하고 있다.
강한 믿음이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다.
3년간의 보고서 (2003)
6. 그분의 옷자락에서 손가락이 떨어지는 날
혈루증을 앓던 여인의 이야기를 묵상하며, 신부님은 자신을 구원자께로 이끄는 동반자가 ‘선교’라고 고백합니다.
잠시라도 그분의 옷자락에서 손가락이 떨어지는 날에는 금세 제 삶의 근저가 황무지로 변해 버릴 것이기에, 그 간절함이 더해질 수밖에 없는 그분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 「땅끝까지」 2019년 5-6월
7. 하늘나라 언어를 배울 수 있기를
초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던 신부님의 소박한 희망입니다. 가르치는 일 너머에 늘 복음이 있었습니다.
한국어를 배우러 왔다가 하늘나라 언어를 배울 수 있기를! 또 저 자신도 한국어를 가르치다가 그 이상을 나눌 수 있기를 말입니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 「땅끝까지」 2019년 5-6월
8. 들꽃 한 송이처럼
게르 곁에서 풀을 뜯는 말 ‘좋다’를 바라보며, 신부님은 애쓰지 않고도 하느님의 현존 안에 사는 단순함을 배웁니다.
눈앞에 있는 것이 먹는 풀이라는 것을 알아보는 것보다 더 분명하고 당연하게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그분의 현존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좋다”가 멋져 보였습니다.
마치 들꽃 한 송이가 온 존재로 하느님 안에서 자신을 피워내듯이 말입니다.
다녀오너라 — 「땅끝까지」 2019년 9-10월
9.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였다고 그러느냐
‘내가 너에게 세례를 주었는데’ 같은 기억에 매이지 않으려는 다짐입니다. 선교사가 한 일은 결국 자신의 일이 아님을 고백합니다.
선교사는 오늘도 무엇인가를 합니다. 잠시 잠깐 자신의 일이라고 느끼고 그렇게 착각할 때도 있지만, 결국 정신 차리고 보면 또한 자신의 일이 아님을 고백하게 됩니다.
다녀오너라 — 「땅끝까지」 2019년 9-10월
10. 가난의 다섯 단계
신부님이 정리한 가난의 단계입니다. 뒤로 갈수록 영성의 깊이가 더해지며, 마지막은 모든 것을 통하여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데 이릅니다.
첫째, 돈이 없음. 둘째, 돈을 아껴 씀. 셋째, 돈의 힘으로부터 자유로움. 넷째, 하느님을 향하도록 돕는 모든 것. 다섯째,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
“오늘 너의 삶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있는가?”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 「땅끝까지」 2019년 11-12월
11. 저는 성당 문을 열었을 뿐입니다
가난한 신자들 앞에서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을 선포해야 했던 날, 신부님은 준비한 원고를 내려놓고 이렇게 강론했습니다.
저는 성당 문을 열었을 뿐입니다. 부유했더라면 백화점에 있을 것 같고, 돈이 많았더라면 친구들과 영화관에 있을지도 모를 여러분이 지금 여기 있습니다.
그 결정적인 시간에 성당에 와 있는 여러분은 행복하지 않은가요.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 「땅끝까지」 2019년 11-12월
12. 마을 어귀까지 나가 기다리는 아버지
신부님의 마지막 기고글입니다. 매일 성체를 현시하며, 늘 기다리시는 주님의 마음을 이렇게 전했습니다.
집 나간 아들을 집안에서 기다리다 지쳐 마을 어귀까지 나가서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눈빛과 사랑을 통하여 당신의 빛을 전하라 하십니다.
사랑은 기다리는 것 — 「땅끝까지」 2023년 5-6월 (마지막 기고)
13. 너희는 나를 버렸어도
쓰레기장에서 발견된 목각 성모상의 이야기에서, 신부님은 끝내 자녀에게 돌아오시는 어머니의 마음을 읽었습니다.
“너희는 비록 나를 버렸어도 나는 결코 너희를 버릴 수 없다.”는 성모님의 마음, 이것이 “목각 성모상의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아닐까요?
사랑은 기다리는 것 — 「땅끝까지」 2023년 5-6월
14. 천일 순례자
신부님은 스스로를 ‘순례자’라 불렀습니다. 매일을 일생의 마지막처럼 살고자 한 다짐입니다.
천일로 내 일생의 정말 마감이다. 저 진짜 그 천일이 끝나는 날 나를 데리고 가셔도 여한 없을 수 있도록 살자, 그렇게 죽자.
다큐멘터리 「사제는 누구인가」 중
15. 사제는 또 하나의 그리스도다
평생의 화두에 대한 신부님의 대답입니다. 그분이 가시는 곳마다 따라가고, 그분이 하시는 것을 다 하며, 결코 떠나지 않는 것 — 그것이 사제의 길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그분이 가시는 곳마다 따라가고 그분이 하시는 것을 다 하며 결코 그분을 떠나지 않는 것이다.
그분의 모범을 따르고, 할 수 있는 대로 완전히 그분이, 또 하나의 그분이 되는 것이다. 사제는 또 하나의 그리스도다.
다큐멘터리 「사제는 누구인가」 중
저도 몽골에 가서 끝까지 잘 가서 거기 가겠습니다. 우리 거기서 만나요.
다큐멘터리 「김성현 신부님의 마지막 강의」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