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그 밖의 몽골 장소들
신부님의 발자취와 몽골 교회의 이야기는 위 네 곳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순례 중 함께 기억하면 좋을 장소들을 모았습니다.
종머뜨 하느님 자비의 성당
울란바타르 남쪽으로 약 40km 떨어진 투브(Tuv) 아이막의 중심 도시 종머뜨(Zuunmod)에 자리한 성당입니다. 칭기스칸 국제공항에서 가까워, 입국하거나 출국하는 길에 들르기 좋은 곳입니다. 김성현 신부님이 유목 문화를 연구하고 가르치며 함께 살아가는 터전으로 삼고자 했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종머뜨의 가톨릭 역사는 항올 성당의 선교 외연이 남쪽으로 넓어지면서 시작되었습니다. 2010년대 초반,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등 수도자들이 이곳에 자리 잡고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운영하며 지역 아이들을 위한 교육과 돌봄의 기반을 다졌고, 이 시기 항올 성당 사제들이 정기적으로 오가며 공소 미사를 집전했습니다.
김성현 신부님은 수녀회가 운영하던 유치원 부지를 이어받아, 이곳을 단순한 본당이 아니라 유목 문화의 연구와 개발을 위한 센터로 구상하셨습니다. 유목민이 언제든 쓸 수 있도록 개방된 우물을 두고, 청년 가운데 장차 유목민을 도울 수 있도록 한국으로 수의학을 공부하러 유학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신부님에게 종머뜨는, 초원에서 품었던 ‘유목 사회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선교’의 꿈을 정착된 형태로 이어가려던 자리였습니다.
신부님은 광활한 툽 아이막을 향한 선교의 비전을 ‘입소문’에서 보았습니다. 그래서 성당 한켠을, 도립병원을 찾아 멀리서 온 손님들을 위한 공간으로 준비했습니다. 진료와 치료를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 무료로 머물며 지낼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이들은 툽 아이막 전역에서 옵니다. 신부님은 그들이 이곳에서 복음의 따뜻한 환대를 받은 것을 기억한다면, 그 소식이 각 지역으로도 전해지리라 생각했습니다. ‘하느님 자비의 성당’은 바로 이 환대의 활동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이 활동은 툽 아이막 전체로부터 인정받아, 해마다 갱신해야 하는 종교 활동 허가를 ‘무기한’으로 취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2009년 10월 26일, 이곳은 ‘하느님 자비의 성당’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본당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종머뜨 본당에서는 어르신을 위한 프로그램, 어린이 돌봄, 그리고 무엇보다 복음 선포를 위한 예비자 교리가 활발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2025년에는 항올 성모승천 성당에서 분가하여 독립 본당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공항을 오가는 길에 이곳에 들른다면, 멀리서 온 이들을 환대하며 입소문으로 복음을 퍼뜨리고자 했던 신부님의 마음을 함께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의 피정 센터(한드가이트 피정의 집)와 체칠리아 경당
신부님이 말년에 가장 애정을 쏟은 곳이 한드가이트 피정의 집과 그 곁의 체칠리아 경당입니다. 신부님은 코로나 시국에도 경당 조성과 정비 작업에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임하셨고, 항올 성모승천 성당에서 함께 살았던 아이들 가운데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두 젊은이를 데려가 함께 일하기도 하셨습니다. 손수 목수 일을 하시면서, 이곳이 몽골 가톨릭 신자라면 누구나 한 해에 한 번이라도 찾아와 주님을 뵙고 기도하는 순례길이자 순례지가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신부님은 이곳을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의 피정 센터’(열왕기 상권 19장 참조)라는 이름으로 운영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누구나 언제든 찾아와 기도할 수 있는, 어머니의 품 같은 곳이 되기를 바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용료는 무료이며, 가능하다면 매일 미사가 봉헌되는 센터가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신부님은 매일의 미사를 희망하셨지만, 여건상 화·수·목요일에 산자 베드로, 노상민 토마스, 지마크 신부님이 요일을 나누어 미사를 집전하셨습니다.
신부님은 에르덴산트 초원에서 다시 불러 모으려던 ‘아브라함 세대’(항올 성당에서 세례받은 첫 신자들을 신부님은 이렇게 불렀습니다)를, 이곳 한드가이트 피정의 집에서 다시 만나 미지근해진 신앙에 새 불을 지피려는 듯하였습니다. 성 베드로 바오로 주교좌 성당 주임으로서 주일 미사를 마치자마자 기쁘게 이곳으로 달려와 건축 작업을 하시다가, 경당 옆에 게르를 치고 머무신 뒤 월요일 아침 미사를 집전하고 다시 주교좌 성당으로 향하시곤 했습니다.
신부님이 참으로 희망하신 것은 하나의 순례길이었습니다. 몽골 가톨릭의 시작이 된 주교관이나 자신이 속한 본당에서 출발해 한드가이트 피정의 집과 체칠리아 경당에 이르는 길입니다. 그 길을 걷는 동안 울란바타르의 속살을 직접 밟으며 기도하고, 침묵 속에서 하느님의 따뜻한 품을 체험할 수 있기를 바라셨습니다.
순례자에게 이곳은, 신부님의 마지막 꿈이 깃든 자리입니다. 초원에서 본당으로, 다시 주교좌의 분주함 속으로 돌아온 신부님이 마지막까지 손으로 일구던 기도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신부님이 그리신 그 순례길을 한 걸음이라도 따라 걸어 본다면, 침묵 속에서 그분이 만나고자 했던 하느님의 품을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르항 — 쓰레기장의 성모상
울란바타르에서 약 250km 떨어진 몽골 제2의 도시 다르항은, 앞서 소개한 ‘목각 성모상’이 발견된 곳입니다. 신자가 아니던 할머니가 쓰레기장에서 성모상을 발견해 집에 모셔 두었고, 그것이 교회로 전해졌습니다. 이 성모상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12월 8일)에 주교좌 성당에 안치될 계획이었습니다. 다르항을 지나거든 이 이야기를 떠올려 보십시오.
카라코룸(하르호린) — 가장 오래된 그리스도교의 흔적
울란바타르에서 서쪽으로 약 360km 떨어진 하르호린(Kharkhorin)은, 13세기 몽골 제국의 옛 수도 카라코룸이 있던 자리입니다. 이곳은 김성현 신부님의 발자취와는 직접 관련이 없지만, 몽골 땅에 남은 그리스도교의 가장 오래된 흔적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 함께 소개합니다.
앞서 제1부에서 보았듯, 카라코룸은 여러 종교가 공존하던 국제도시였고 이곳에 상설 네스토리우스(경교) 성당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1254년 프란치스코회 수사 기욤 드 뤼브룩이 이곳을 찾았을 때, 몽케 칸의 가족이 네스토리우스 경당의 전례에 참여하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2006~2009년 몽골·독일 공동 발굴팀은 카라코룸 북쪽 외곽에서 십자가 조각과 유럽풍 촛대를 닮은 청동 유물이 나온 건물 유적을 발굴했는데, 이는 그 시기의 네스토리우스 성당으로 추정됩니다.
오늘날 하르호린에는 16세기에 세워진 몽골 최초의 불교 사원 에르덴 조(Erdene Zuu) 수도원이 남아 있어, 많은 이들이 찾는 명소이기도 합니다. 울란바타르에서 멀어 당일로 다녀오기는 어렵지만, 에르덴산트 방면(서쪽)으로 향하는 장거리 순례를 계획한다면 함께 묶어 볼 수 있습니다. 옛 제국의 수도에 서면, 라마 불교가 자리 잡기 훨씬 전부터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이 한 번 뿌려졌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됩니다. 800년 전의 그 씨앗과, 오늘 김성현 신부님을 비롯한 선교사들이 다시 뿌린 씨앗 사이에서, 하느님의 긴 기다림을 묵상해 볼 수 있는 자리입니다.
이 기다림은 앞서 만난 다르항의 성모상과도 이어집니다. 신부님은 마지막 기고글에서 ‘하느님의 기다림’과 ‘성모님의 기다림’을 나란히 놓으셨습니다. 카라코룸의 무너진 성당 터에서 800년을 기다려 온 하느님의 인내와, 다르항의 쓰레기장에서 한 할머니의 손길을 기다리던 목각 성모상의 마음은 결국 하나입니다. “너희는 비록 나를 버렸어도 나는 결코 너희를 버릴 수 없다”는 그 마음입니다. 몽골 땅 곳곳에 흩어진 기다림의 흔적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순례자에게 들려줍니다.
울란바타르의 한인 공동체
에르덴산트를 찾은 벗들
울란바타르에는 한인 신자 공동체가 있습니다. 신부님은 초기에 한인들과 매 주일 복음을 나누고 피정을 함께했지만, 본당을 맡은 뒤에는 현지인의 주인의식을 고양하기 위해 한인들의 본당 활동을 의도적으로 자제시켰습니다. 그러면서도 한인 자영업자들이 수많은 몽골 직원을 만나는 ‘평신도 선교사’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했습니다.
신부님의 묘 — 두 곳의 안식처
신부님은 대전가톨릭대학교 하늘 묘원과 몽골 지목구 교회 묘지, 두 곳에 모셔져 있습니다. 한국과 몽골 양쪽에 안식처를 둔 것은, 한국 교구 사제이자 몽골 선교사로 살아온 신부님의 삶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