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덴산트 · 선교 초기 (가나안 농장)

초원에서, 함께 걷는 이들과
초원에서, 함께 걷는 이들과

울란바타르에서 멀리 떨어진 에르덴산트의 초원. 이곳에 ‘가나안 선교농장’이 있었습니다. 2000년 몽골에 도착한 김성현 신부님이 가장 먼저 살을 부빈 땅이며, 이준화 로베르토 신부님과 함께 통나무 경당을 짓고 밀과 감자를 가꾸던 곳입니다.

위치에르덴산트 — 울란바타르에서 (당시) 비포장도로로 약 200km
시기2000년 4월 도착 직후 ~ (첫해·둘째 해 합쳐 6~7개월 농장 생활)
함께한 이이준화 로베르토 신부님(농장 설립), 선교 체험 온 신학생들
주요 일통나무 경당 건축, 밀·감자 농사, 한국어 교사, ‘사랑의 학교’ 캠프

이 땅의 이야기

2000년 4월 21일 몽골에 도착한 신부님은 이준화 로베르토 신부님이 시작한 ‘가나안 선교농장’에서 첫 4개월을 살았습니다. 이 농장이 처음 자리한 곳이 에르덴산트였습니다. 신부님은 선교 체험차 온 신학생 아홉 명과 함께 통나무 경당을 지었습니다. 공세리 시골 출신이라 농사일이 낯설지 않았던 그는, 망치질과 도끼질로 팔다리 근육이 다져지는 것을 헬스장에라도 다니는 기분이라며 즐거워했습니다.

이곳에서 읽는 신부님의 글 ― 몽골에서 쓴 첫 편지

신부님이 몽골에서 처음 쓴 편지(2000년 7월 15일)는 바로 이 농장의 게르에서 쓰였습니다. 노동의 기쁨과 가난의 평화가 담긴 이 편지는 신부님 영성의 출발점을 보여줍니다.

나자렛의 청년 예수, 목공 일로 근육을 만드셨을 그분, 그분을 많이 닮을 수 있는 은총의 시기!

통나무 하나를 자르며 내 안에 가득한 자존심을 함께 잘라내고, 20cm짜리 못을 박으며 교만을 빼어내 심고, 도끼날로 옹이를 날리며 나의 교만함을 더불어 날릴 수 있다면…

몽골 와서 처음으로 편지를 쓴다(2000)

편지의 끝맺음은 신부님 특유의 유쾌함과 가난의 자유가 함께 묻어납니다.

나는 결혼도 안 하고 내 집을 장만한 갑부라네.

가나안 농장 나의 게르에서, 김 스테파노

모래바람 속의 주님

도착 직후 남긴 또 다른 메모에는, 거칠고 메마른 땅에서 만난 주님이 그려져 있습니다. 신부님은 모래바람 사이로 말을 몰고 가는 말치기의 무리 한켠에서, 말없이 함께 걷고 계시는 주님을 보았다고 적었습니다.

그 모래바람 사이로 말치기 한 사람이 자신의 말들을 이끌고 묵묵히 행진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 무리 한켠에 말없이 걷고 계시는 모래바람 속의 주님을 보았나이다. 잊지 않게 하소서.

2000. 5. 6 메모

‘사랑의 학교’와 선교사의 첫 발견

농장 둘째 해, 신부님은 관리자의 자리를 버리고 주민들의 친구가 되려 애썼습니다. 머리를 깎아 주고, 먼저 농땡이를 부려 보기도 하고, 점심시간에 한국말을 가르치며 웃겼습니다. 그러다 선교 체험 온 신학생들과 함께 인근 어린이 70여 명을 모아 2박 3일 ‘사랑의 학교’ 캠프를 열었습니다. 이 솔직하고 직접적인 만남이 신부님에게 선교사로서의 첫 희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순례 묵상

에르덴산트의 초원에 서거든, 한 한국인 사제가 신학생들과 통나무를 쌓아 올리며 자신의 교만을 함께 깎아내던 장면을 그려 보십시오. 신부님에게 가난과 노동은 형벌이 아니라 ‘나자렛의 청년 예수’를 닮아 가는 은총의 길이었습니다. 이 첫 땅에서 싹튼 그 마음이, 훗날 신부님을 다시 초원으로 돌아오게 합니다.